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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시리즈

가족 시리즈

작품명
가족 시리즈
작가명
황영성
제작년도
1995
재료
캔버스에 유채
크기
61×73
작가설명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 대학원 졸업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 황영성 麗 GALLERIE BHAK 오광수 (미술평론가) 데뷔기의 작품이 한 작가의 생애를 통한 창작의 판력에 많은 암시를 던지는 예를 흔히 보 아오고 있다. 장차 완성되어질 전체적 풍경을 위한 구조적 씨앗이 데뷔기의 작품 속에 내 밀히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이 최초로 던진 씨앗 속에 작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향기와 내 음을 이미 응축시키고 있다. 황영성의 데뷔기의 작품 (토방)과 (온고)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71년과 73년에 각 각 국전에서 특선한 작품이었다. 그가 지금껏 추구해 오고 있는 소재의 내역과 색채의 감 각과 또 그것들이 어우러져 마침내 서정적 양식화로 진행될 조형적 향방이 이 두 작품 속 에 은밀히 숨쉬고 있음을 보게 된다. (토방)과 (온고)는 반복되는 소재이다 (토방)이 약간 먼 거리에서 초가를 바라본 시점이라 면 (온고)는 시점을 더욱 밀착시켜 초가마루와 마루에 나앉아 있는 촌노(村老)에 맞추고 있다. 전자는 바라본다는 시점에서 객관적 거리가 인식되고 있는 반면. 후자는 이미 바라 본 다는 거리보다 아주 가까이 다가와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 직접적인 관계로서의 장(場) 으로 바뀌고 있다. 두 작품에 이어 곧바로 나타나는 70년대 중반이후의 (가족) 과 (마을) 시리즈는 바로 이 관계로서의 장이란 그 독특한 설화의 전개이다. 70년대 후반과 80년대를 통해 황영성은 (가족도), (가족이 있는 정원), (소와 달과 가족의 마을), (마을), (우리 마을 이야기)등 마을 시리즈를 반복적으로 펼쳐 보였다. 물론 이 두 시리즈는 굳이 분화할 필요 없는 동일한 내용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가족과 마을은 떼어 놓을 수가 없으며, 그 속에 등장하는 가축과 나무와 달 역시 전체적 풍경을 이루는 인자로 서 하나로 어우러져 있다. 인간과 가축과 자연이 분화되지 않는 상태로 있다는 것은 일종 의 범신적인 풍경을 예상시킬 수 있다. 그러나 황영성의 화면은 미분화의 상태가 아니라 확고하게 질서지워진 테두리 속에서 서로 삶을 같이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가족은 오뚝이 처럼 쌓여 지지만 부모와 아이들의 모습이 분명한 윤곽으로 표현되며, 소나 초가의 모습 도 뚜렷하게 파악할 수 있다. 제각기 뚜렷한 영역을 지니면서 하나의 공간 속에 옹기종기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 동등한 공간의 점유는 서로 겹치지 않는 많은 작은 면들의 분절 로 나타나면서 평면성을 고양시키고 있다. 그 독특한 기호화와 공간의 증식의 패턴은 이 미 배양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95년 이후의 작품에선 한층 기호적인 요소의 증대를 목격 할 수 있으며, 공간의 증식은 균질한 면의 분절로 나타나고 있다. 가족도는 단순한 인간 가족이 아니라 자연의 가족, 만물의 가족으로 탈바꿈된다. 인간의 모습이 있는가 하면 말, 개, 닭, 호랑이 같은 동물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며 나비, 벌, 꽃, 물고기, 과일이 등 장되기도 한다. 물론 이것 뿐이 아니다. 건물과 도시의거리와 공장의 굴뚝과 비행기 같은 문명의 산물들도 등장한다 그것들은 똑같은 면적 속에 극도로 단순화된 형태로 구현되어 지고 있다. 어떤 대상들을 선택하고 표출한다기보다 정해진 상자속에 모든 것이 무차별하게 끌어들 여지고 있는 인상이다. 인간 뿐 아니라, 인간주변에 있는 이 모든 사물들이 하나의 공간 속에 같이 참여함으로서 마침내 거대한 가족도를 실현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만큼 화면 에 서로 다른 인자들이 내뿜는 색깔과 향기로 인해 풍성한 밀어의 화원이 펼쳐지게 된다. 그리고 보면, 그의 화면은 많은 색깔과 향기로 가득 히 덮혀있는 꽃밭을 연상시키게 된 다. 그러나, 같은 시기 그의 또다른 일련의 작품들에선 극도로 색채가 배제된 모노크롬의 기 호들이 등장되고 있다 여러 색채로 표현되었던 사물들은 이제 동일한 색채를 띄면서 실루 엣처럼 윤곽선으로만 개별적 속성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이는 더욱 기호화. 평면화의 밀도를 고양시키는 작용을 한다. 단색조의 변모가 갑작스런 현상같으면서도 사실은 이미 그의 초기의 작품에서와 80년대로 전개되는 작품의 영역을 통해 암시된 것이라 할 수 있 다. 그는 대단히 풍요로운 색채감정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실은 대단히 절제된 색채 사용 을 지속시켜 온 편이다. 초기의 회색과 청색들을 기조로한 작품에서 중도의 짙은 녹색과 청, 황의 바레에션을 가하던 작품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많은 색채가 사용된 것은 아니었 다. 오히려 대비적인 색채의 사용으로 인해 극적인 효과를 높혔을 뿐이다. 이제는 그러한 색채의 열매들이 익어 떨어지고 다시 씨앗으로 되돌아간 작은 형태들이 공 간 가득히 밀집되면서 또다른 세계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하나하나 많은 잠재된 이야기 들, 많은 경험들, 많은 상상들이 은밀히 감추어진 처소로써 모양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다. 이 극도의 형태의 요약은 대상의 최소한의 설명마저 지워버림으로서 그 어떤 것도 아 닌 추상적 형태로 남아나게 한다. 이제는 일일이 모양을 유추할 필요도 없이 창조된 형태로 현현된다. 마치 문양과 같이 화 면 가득히 증식되어가는 패턴화는 장식성과 더불어 강인한 생성의 전개를 반영해주고 있 다. 그것은 곧 삶의 이야기, 생명의 합창을 대변해 주는 장의 설정이기도 하다 이미 초기 에서부터 황영성의 작품속엔 강한 음악성이 내포되어 있었다. 색채 조화와 대비는 음색 의 조화와 대비로, 시각적인 데서 청각적인 빠른 전환이 이루어졌다. 이제 그의 화면은 화 려한 음색의 어우러짐보다 무겁고도 낮은 음색의 은은한 화음이 대신 되고 있다. 형태나 색채에 있어 단순화와 절제는 안으로 응결되는 정신의 환원현상에 다름아니다. 무 르익어간다는 또다른 표현이다. 아직도 연령에 있어 무르익어가는 경지라는 표현이 적절 치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미 예감된 자기 세계를 줄곧 천착해온 그의 지금의 단계는 심 화된 양상으로서 어느 경지임이 분명하다.
작품설명
황영성의 1995년 작품으로, 화면 가득 기호적인 요소의 증대와 함께 분할되어진 균질한 공간 을 볼 수 있다. '가족'이라는 작품의 제목은 단순한 인간 가족이 아닌, 자연의 가족, 만물의 가족을 나타낸다. 그것들은 똑같은 면적 속에서 극도로 단순화된 형태로 구현되어지고 있으 며, 풍요로운 색채감정을 느끼게 한다.